한글의 창제원리

한글 만들기는 우선 여덟 개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닿소리 글자 다섯(ㄱㄴㅁㅅㅇ)과 홀소리 글자 셋(ㆍㅡㅣ)이다. 글자 만들기에서 닿소리와 홀소리를 구별한 것은 이 두 가지 소리가 소리마디를 이룰 때 그 구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홀소리는 이름 그 대로 홀로 소리마디를 이룰 수 있는 독립적인 소리인데, 닿소리는 홀소리와 닿아야 내기가 쉬운 의존적인 소리이다.

 




'ㄱ(기역)'이란 글자는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의 뒤쪽 곧 어금니에 닿는 혀의 부분이 곱사등처럼 굽어 목젖 가까이 붙는 옆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와 같은 입 모양으로 나는 소리가 'ㅋ,ㄲ' 글자의 소리들이라, 그 글자 모양도 서로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 'ㄱ'에 금이 하나 덧붙은 'ㅋ'은 그 소리가 ㄱ[그] 소리에는 없는 ㅎ[흐] 소리가 함께 나서 아주 거세어 지기 때문이다.

'ㄱ'을 겹쳐 'ㄲ'을 만든 것은 ㄲ[끄] 소리가 ㄱ[그] 소리보다 목과 입 전체에 힘을 많이 줘 내는 센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소리들을 모두 어금닛소리 또는 뒤혓소리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앞에 말한 대로 이런 소리들을 낼 때는 언제나 어금니에 닿는 뒤혀 부분이 굽어 오르기 때문이다.

 



'ㄴ(니은)'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의 앞쪽이 우묵하게 구부러지고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옆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와 같은 입 모양으로 나는 소리가 `ㄷ(디귿) ㅌ(티읕) ㄸ(쌍디귿) ㅥ(쌍니은)` 글자의 소리들이라, 이 글자 모양도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

이 소리들을 모두 혓소리 또는 앞혓소리라고 부른다. ㄴ[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이고 ㄷ[드]는 그보다 굳은 소리이기 때문에 'ㄴ'에 금을 하나 더해서 'ㄷ'을 만들었다. 'ㄷ'에서 'ㅌ ㄸ'이 나온 이치는 앞의 'ㄱ'에서 'ㅋ ㄲ'이 나온 이치와 같다.

역시 'ㄴ'에서 번져 나온 것이 'ㄹ(리을)' 글자인데, 그 소리가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금이 많이 덧붙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 소리는 혀끝이 ㄴ와 비슷한 자리에 닿되 혀의 모양이 많이 구부러지거나 떨게 되는 반혓소리다. 이 글자도 혀의 옆 모습을 본떴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ㅁ(미음)'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아래위의 두 입술이 붙기 때문에 입의 모양을 본뜨고 모나게 다듬은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두 입술을 붙이고 내는 소리가 'ㅂ(비읍), ㅍ(피읖), ㅃ(쌍비읍)' 글자의 소리들이라, 이들도 'ㅁ' 한 글자에서 번져 나간 것이다.

ㅁ[므]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이고 ㅂ[브]는 그보다 굳은 소리이기 때문에 'ㅁ'에 두 뿔을 더해서 'ㅂ'을 만들었다.

 'ㅂ'글자에 아래로 두 발을 붙이고 옆으로 눕힌 것이 'ㅍ' 글자이고, 'ㅂ' 글자를 두 개 겹친 것이 'ㅃ' 글자이다. 이처럼 'ㅂ'에서 'ㅍ, ㅃ'이 나온 이치는 'ㄱ'에서 'ㅋ, ㄲ'이 나온 이치와 같다. 이 글자들의 소리를 모두 입술소리라고 부른다.

 


'ㅅ(시옷)'이란 글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끝과 윗니 사이를 좁히고 그 사이로 바람을 스쳐 내게 되기 때문에 이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 글자의 소리보다 더 되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겹쳐 만든 것이 'ㅆ(쌍시옷)' 글자이다. 또 이 글자의 소리보다 더 굳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금을 더해 만든 것이 'ㅈ(지읒)'이고, 이 'ㅈ'보다 더 되게 나는 소리를 적기 위해서 다시 겹쳐 만든 것이 'ㅉ(쌍지읒)'이다.

이런 소리들을 묶어서 잇소리라고 부른다. 역시 'ㅅ'에서 번져 나온 것이 'ㅿ(반시옷)'인데, 그 소리가 더 부드러움에도 불구하고 금이 더해 졌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 소리는 혀끝이 ㅅ[스]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혀끝을 울려 내는 반잇소리이다.



'ㅇ(이응)'이란 글자는 목청이 울리는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목구멍의 동그란 단면을 본뜬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청에서 나되 그보다 더 굳은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글자에 금을 그어 'ㆆ(된이응)'을 만들었다. 이 'ㆆ'의 소리는 이를테면 "앗! 안됏!"라고 말할 때 'ㅅ'받침으로 적히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을 정확히 적자면 실은 "앟! 안됗!"로 적어야 된다는 말이다.

이 소리보다 더 거센 목청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금을 하나 더 그어 'ㅎ(히읗)'을 만들었다. 또 'ㅇ'의 소리보다 더 된 소리를 적기 위해서 'ㆀ(쌍이읗)'을 만들었고, 'ㅎ'의 소리보다 더 된 소리를 적기 위하여 'ㆅ(쌍이읗)'을 만들었다. 역시 'ㅇ'에서 번져 나온 것이 'ㆁ(옛이응)'이다.  이 글자의 소리를 낼 때 혀의 모양이 'ㄱ' 따위의 소리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ㄱ'을 본받지 않고 'ㅇ'을 본받아 만든 것은 또한 예외적인 일인데, 그것은 'ㆁ'의 소리가 'ㅇ'의 소리처럼 목청 울림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소리의 느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고, 또 'ㅇ'보다는 더 굳은 맛이 있기 때문에 금을 하나 더 그어 만든 것이다.


이제 닿소리 글자들이 번져 나온 관계를 통틀어 보면,
밑 글자(기본 글자) 다섯이 적어도 서른 아홉으로 번진 셈이다. 이러한 닿소리 홑글자들을 둘씩 셋씩 겹쳐 적은 세종 당대의 닿소리 겹글자들까지 포함시킨다면 그 번진 수효는 예순일곱으로 늘어난다.

초성 (11): ㅥ, ㅳ, ㅄ, ㅴ, ㅵ, ㅶ, ㅷ, ㅺ, ㅻ, ㅼ, ㅽ
종성(17): ㅦ, ㅧ, ㅨ, ㄺ, ㅩ, ㅪ, ㄻ, ㄼ, ㅫ, ㄽ, ㅬ, ㅭ, ㅮ, ㅯ, ㅰ, ㅄ, ㆂ


다음으로 홀소리는 닿소리와 그 성격이 다른 만큼, 그 글자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점 'ㆍ(아래아)'와 직선 둘 'ㅡ, ㅣ' 이들이 홀소리 글자의 밑글자다. 점은 하늘의 둥근 모습을 본뜨노라 한 것이고, 수평선은 땅을 본뜨노라 한 것이고, 수직선은 사람을 본뜨노라 한 것이다. 이 세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세 가지 종류의 홀소리들 가운데 각각 그 대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홀소리 글자들의 밑 글자가 된 것이다. 세 종류의 홀소리란, 첫째가 밝은홀소리이고 둘째가 어두운홀소리이며 셋째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가운데 홀소리이다.


이 세 글자가 다음과 같이 먼저 일곱 개로, 나중에는 다음과 같이 모두 서른 한 개나 되는 홀소리 글자로 번져 나갔다.

밝은 홀소리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며 대표적인 소리는 점 'ㆍ(아래아)'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밝은 홀소리로 우선 'ㅗ'와 'ㅏ'로 나타내는 소리가 있다. 'ㅗ'는 그 소리가 밝은 소리임을 나타내기 이해서 아래아 'ㆍ'를 'ㅡ'의 위에 올려 놓은 것이고, 'ㅏ'는 역시 그 소리가 밝은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래아 'ㆍ'를 'ㅣ'의 밖에 내어 놓은 것이다.   'ㅗ' 소리는 'ㆍ'소리보다 입술을 오무려 내는 소리이고, 'ㅏ' 소리는 'ㆍ'소리보다 입술을 펴서 내는 소리이다.

이들 세 글자 'ㅏ, ㅗ, ㆍ'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앞에 포개어져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ㅑ, ㅛ,  '들이다.

 이 가운데 다섯 글자 'ㅏ, ㅑ, ㅗ, ㅛ, ㆍ'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뒤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ㅐ, ㅒ, ㅚ, ㆉ, ㆎ'들이다.

 이 가운데 다시 두 글자 'ㅏ, ㅐ'의 소리에 'ㅗ'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ㅘ, ㅙ'들이며, 또한 이와 비슷하게 두 글자 'ㅑ, ㅒ'의 소리에 'ㅛ'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ㆇ, ㆈ'들이다.

다만 이들 전체 가운데 세 글자 'ㆇ, ㆈ,  '들은 실제로 쓰인 일이 없는 만큼 이론적인 가능성을 보인 데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들 밝은 홀소리 글자를 모두 합하면 열 다섯 자이다.

어두운 홀소리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며 대표적인 소리는 'ㅡ'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어두운 홀소리로 우선 'ㅜ'와 'ㅓ'로 나타내는 소리가 있다. 'ㅜ'는 그 소리가 어두운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ㅡ'의 아래에 'ㆍ'를 내려 놓은 것이고, 'ㅓ'는 역시 그 소리가 어두운 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ㅣ'의 안에 'ㆍ'를 들여 놓은 것이다. 'ㅜ' 소리는 'ㅡ'소리보다 입술을 오무려 내는 소리이고, 'ㅓ'소리는 'ㅡ'소리보다 입술을 펴서 내는 소리이다.

이들 세 글자 'ㅓ, ㅜ, ㅡ'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앞에 포개어져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ㅕ, ㅠ,  '들이다. 이 가운데 다섯 글자 'ㅓ, ㅕ, ㅕ, ㅠ, ㅠ, ㅡ'의 소리에 'ㅣ' 가운데 홀소리가 뒤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ㅔ, ㅖ, ㅟ, ㆌ, ㅢ'들이다. 이 가운데 다시 두 글자 'ㅓ, ㅔ'의 소리에 'ㅜ'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ㅝ, ㅞ'들이며, 또한 이와 비슷하게 두 글자 'ㅕ, ㅖ'의 소리에 'ㅠ' 소리가 앞에 붙어 한 소리마디가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가 'ㆊ, ㆋ'들이다. 이들 가운데 한 글자 ' '도 이론적인 가능성을 보인 데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어두운 홀소리 글자들은 모두 열 다섯 자이다.


이와 같이 한글이 만들어 진 경위를 훑어 보면,
닿소리 글자 다섯이 예순일곱으로, 홀소리 글자 셋이 서른 하나로, 다시 말하면 밑 글자 여덟이 모두 아흔 여덟으로 곧 열 두 곱 넘게 불어난 셈이다. 그것도 치밀한 연결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글만들기의 이처럼 독창적이고도 정연한 조직성에 대해서 미국의 역사학사 레드야드(The Korean Reform od 1446: The Origin, backgroung and Early History of Korean Alphabet)는 다음과 같이 예찬하고 있다.


『 한글의 가장 특이하고 흥미로운 요소는 시각적인 모양과 시각적인 기능 사이에 치밀한 대응이 나타나 있는 점이다.
닿소리 글자와 모양은 홀소리 글자의 모양과 아예 유형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 두 갈래 안에서조차 세종 임금은 낱 글자의 모양을 통해서 또 다른 중요한 여러 관계가 드러나도록 했다. 닿소리 글자에서는 글자 모양이 닿소리의 종류와 관련되어 있고, 홀소리 글자에서는 뒤홀소리와 가운데 홀소리 부류가 조직적으로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처럼 멋과 뜻을 갖춘 합리적인 낱소리 글자는 다시 없다......모양과 기능의 관계라는 생각을 구현한 방식에 대해서는 참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 종류를 따라 글자 모양을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그렇다 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 모양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발음 기관을 본떠 꾸민 것이라니... 이것은 정녕 언어학적인 호사의 극치다! 조선의 음운학자들은 참으로 솜씨가 많았거니와, 창조적인 상상력도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